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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들

이토록 황홀한 타르트의 맛이라니…

출처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65

 

신내림을 경험한 적 있나? 난 있다. 그것도 아주 자주, 그것도 아주 영험하고 카리스마가 뱃속을 찌르는 위대한 신이다. 처녀귀신도 그분 앞에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간다. 식신이다. 그것도 달콤한 식신. 생각만 해도 부르르 떨린다, 침샘이.

옛날 옛적, 글 써서 먹고살던 시절, 다른 글 쓰는 이들은 영혼의 빈틈을 부여잡고 밤이면 밤마다 글을 쓸 때, 나는 내 위장의 빈틈을 부여잡고, 과자와 케이크와 빵을 탐닉했다. 아니다. 흡입했다. 한마디로 걸신들렸다. 그렇게 오랜 세월 열심히 먹자니, 어느 날 달콤한 식신이 내게 속삭였다. 먹지만 말고, 좀 만들어보지? 그러면 영화에서 보던 것들도 침만 흘리지 않고 뚝딱 만들어 먹을 수 있잖아? 거기다 베이커리도 하나 뚝딱?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이제야 고백하건대 내 어린 시절 꿈은 ‘빵집 주인’이었다. 날마다 빵과 달달한 것들을 원 없이 먹자면 그 수밖에 없어 보였다. 물론 어른인 누가 ‘장래 희망이 뭐냐?’ 이런 걸 묻거나 학교에서 쓰라면, ‘발레리나’니 ‘화가’니 이런 소리를 해댔다. 빵집 주인, 어려서 생각해도 폼 안 나잖아?


   
ⓒ시사IN 백승기


그러다 베이킹의 신세계를 만나고, 내 천직을 발견해 일찍이 그 길로 뛰어들어 전 세계를 누비며 밀가루와 설탕 가루를 뿌려대다, 급기야 두바이 7성급 호텔에서 페스트리 셰프로 일하다 조국이 나를 불러(왜?) 귀국했다면 거짓말이고, 그냥 되는 대로 먹고 살았다. 그러다 불현듯 눈에 설탕 가루가 들어가, 베이킹 공부를 하겠다고 ‘프랑스 요리학교’를 찾아 런던으로 훌쩍 떠날 때까진.


카카오 함량이 적어 슬펐던 초콜릿이여, 안녕

그리고 미안하다. 런던에서 처음 먹어봤다. 초콜릿 타르트. 기가 막혔다. 맛있어서. 그리고 지금껏 내가 오해한 초콜릿 맛 때문에. 그전까진 내게 초콜릿은 ‘너무 달아서 슬픈 짐승’과였다. 그런데 웬걸? 초콜릿은 달고 썼다. 달콤한 쓴맛, 달콤 쌉쌀함이 입안에서 불꽃놀이를 해대고 살사춤을 춰댔다. 그럼 지금껏 내가 먹은 초콜릿은 왜 그리 달았냐? 그들은 한마디로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 아니라, ‘카카오 함량이 적어 슬픈 초콜릿’이었다. 쳇, 모르니까 입이 고생한다. 카카오 함량 70% 이상인 질 좋은 프랑스 초콜릿으로 만든 초콜릿 타르트는… 말이 필요 없다. 바삭바삭 씹히는 타르트 위로 크림과 섞인 달콤 쌉쌀한 초콜릿 가나슈가 부드럽게 감겨온다. 으음. 영화 <헬프>를 보면 안다.

인종차별이 일상이던 미국 케네디 대통령 시절, 동네에 요리 솜씨 좋기로 소문난 흑인 가정부 미니는 특히 기가 막힌 초콜릿 파이(실은 정확히 부르자면 ‘타르트’다)를 만든다. 인종차별 대마왕 백인 여성 힐리까지 미니 표 ‘초콜릿 파이’에 환장할 정도다.


   
영화 <헬프>에서 흑인 가사 도우미 미니는 기가 막힌 초콜릿 타르트를 만든다(오른쪽).


“음~ 으음~ 오~. 이 파이는 언제나 정말 기가 막혀.”

자기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미니를 잘라놓곤, 되레 오만 거짓 소문을 내서 다른 집 가정부 자리도 얻기 힘들게 만들어놓은 이분. 급기야 손가락에 묻은 초콜릿까지 쪽쪽 빨다 말고 새삼 미니더러 묻는다.

“뭘 넣었기에 이 파이, 이렇게 맛있는 거야?”

나도 그게 무척 궁금했는데, 다행히도 미니는 반짝이는 눈과 야망 어린 목소리로 고백한다.

“멕시코에서 가져온 바닐라와 아주… 특별한 걸 넣었거든요.”

그 특별한 건? 쉿! 비밀이다. 영화를 보면 안다. 아래 초콜릿 타르트 레시피에는 아주 ‘특별한 그것’은 넣지 않았다. 아쉬우면 영화를 보고 그 ‘특별한 것’을 첨가해도 된다. 보장한다. 아주 특별한 초콜릿 타르트가 될 게 틀림없다. 초콜릿 금지령을 자신에게 내리고 싶을 만큼.

금지령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초콜릿이 유럽에 들어온 지 오래지 않은 16세기 한때 로마 교황청은 초콜릿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다. 초콜릿이 뭘 어쨌다고? 초콜릿이 ‘지나친 매력과 흥분을 유발시키는 자양제’라서였다. 하지만 당시 교황 피우스 5세가 금지령을 풀었다. 초콜릿을 마셔본 뒤였다. 이유? 교황님 가라사대, 이렇게 맛없는 것이 습관이 될 리 없다. 교황님 만세다.



뚝딱 만들어도 맛은 기막힌 초콜릿 타르트


까다로운 타르트 셸 반죽? 만들지 않아도 된다. 솔직히 이 녀석은 왕초보가 뚝딱 만들 만큼 만만한 녀석이 아니다. 멋모르고 맨 처음 책 보고 만든 내 첫 타르트 반죽은 스파이더맨이 던진 거미줄이 따로 없었다. 거기다 냉장고에 수시로 넣었다 빼주느라 시간도 꽤 걸린다. 그래서 쉽게 가자. 타르트 셸만 따로 만들어 판다. ‘미니 타틀릿’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이제 그 위에 얹을 필링만 만들면 된다. 아주 쉽다.
타틀릿은 미니 타르트다. 만드는 방법도 모양도 똑같다. 크기만 다르다.


   
ⓒ시사IN 백승기


●걸리는 시간
약 30분 + 냉장고에서 최소 2시간

●재료
미니 타틀릿(한 개당 지름 5㎝·높이 1㎝) 7개(한 세트), 다크 초콜릿 커버처 155g(제과용 초콜릿, 카카오 함량 최소 50% 이상, 대형 마트 베이킹 코너나 인터넷 제과제빵 재료 쇼핑몰에서 살 수 있다), 생크림 165㎖(우유로 만든 것, 식물성 생크림에 속지 않게 주의), 중간 크기 달걀 1개, 우유 70㎖

● 준비물
큰 스테인리스 볼 2개, 작은 냄비 1개, 큰 냄비 1개, 실리콘 주걱, 거품기

● 만들기
① 귀여운 미니 타틀릿을 죽 늘어놓는다. 넙적한 큰 냄비에 물을 10㎝ 높이 이상 붓고 끓인다. 냄비보다 작은 스테인리스 볼에 초콜릿 커버처를 담는다. 자잘한 단추 모양이 아니라 커다란 막대기 같은 큰 초콜릿 커버처면 대충 잘게 잘라 담는다. 물이 끓으면 불을 최대한 줄인 뒤, 냄비 물 위에 초콜릿 볼을 얹어놓고 실리콘 주걱으로 저어주며 초콜릿을 녹인다. 물이 초콜릿에 튀거나 들어가지 않게 조심한다. 절대 초콜릿을 끓이지 않도록 조심한다. 다 녹았다 싶으면 초콜릿 볼을 냄비에서 꺼내 아무데나 놓아둔다.
② 달걀을 넉넉한 볼 혹은 양재기에 담고 거품기로 마구 저어 풀어준다.
③ 크림과 우유를 작은 냄비에 넣고 함께 끓인다. 끓어 넘치지 않도록 지켜보다, 부글부글 끓어올라 허연 거품이 냄비 가장자리 근처까지 치고 올라온다 싶으면 얼른 불을 끈다. 달걀 푼 데에 휙 들이붓고, 거품기로 열심히 저어준다.
④ 뜨거운 크림과 우유를 뒤집어쓴 달걀을 이번에는 미리 녹여둔 초콜릿 볼에 서너 번에 걸쳐 나눠 부어가며 거품기로 잘 저어준다. 점점이 떠다니던 크림색은 모조리 사라지고 오로지 시커먼 초콜릿 빛만 남을 때까지 잘 저어준다.
⑤ 쟁반 위에 죽 늘어놓은 타틀릿에 조심스레 따라 붓는다. 초콜릿 홍수가 나지 않게, 타틀릿 틀의 90% 높이만큼만 붓는다.
⑥ 조심스레 냉장고로 옮긴다. 최소 두 시간 이상 냉장고에 놔둔다. 굳었으면 꺼내 먹는다. 우유나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당연히 더 맛있다.

고수의 맛을 보고 싶다면?
타르트 파는 곳은 뜻밖에 많다. 하지만 제대로 된 프랑스 초콜릿 타르트는 드물다. 서울 상수역 근처 ‘퍼블리크’에 가면 그런 초콜릿 타르트를 만날 수 있다. 바삭한 타르트 셸에 얌전히 담긴 새까만 가나슈는 질 좋은 프랑스발로나 초콜릿(카카오 함량 67%)으로 만들어, 달콤 쌉쌀한 풍미가 그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