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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들

2500m 초장거리 저격의 비밀은?

출처 : http://science.dongascience.com/articleviews/article-view?acIdx=11768&acCode=4&year=2012&month=07&page=1




2010년 5월 한 영국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를 떠난 8.59mm 구경의 탄환은 초속 900m가 넘는 속도로 2.64초 동안 날아가 표적에 명중했다. 탄환이 날아간 거리는 총 2475m. 현재 가장 먼 거리에서 저격에 성공한 기록이다. 방아쇠를 당긴 크레이그 해리슨 상병은
“바람, 날씨, 시야,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고성능 망원경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 먼 거리의 표적을 저격수는 어떻게 맞추는 걸까.



“타아아~앙.”

산등성이에서 총성이 쩌렁쩌렁 메아리친다. 그러나 총에 맞은 아군은 총성이 울리기 몇 초 전에 쓰러져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이것은 6·25 전쟁을 다룬 영화 ‘고지전’의 한 장면이다. 방아쇠를 당긴 북한군 저격수 차태경(김옥빈 분)의 별명은 ‘2초’. 아군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2초 뒤에 총성이 들린다는 데서 비롯된 악명이다.

당시 전쟁에서 사용한 러시아제 모신나강 소총의 탄속은 초속 800m다. 음속보다 2배 이상 빠르다. 영화처럼 총알이 총성보다 2초 먼저 도착하려면 표적까지 12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이 거리는 서울을 통과하는 한강 폭보다 길다(성동구와 강남구를 잇는 영동대교의 길이가 1065m다). 앞서 소개한 영국군 저격수 크레이그 해리슨 상병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이보다 두 배 먼 2475m 거리의 저격에 성공했다.

군사적으로 저격은 ‘1km 이상의 먼 거리에서 하는 정밀한 사격’을 뜻한다. 컴퓨터 게임에서는 마우스 클릭(우클릭-좌클릭)만 하면 되지만, 실제 저격은 그렇지 않다. 한 번 총구를 떠난 탄환은 어떤 오차 수정도 없이 1km가 넘는 먼 거리를 홀로 날아가야만 한다. 탄환이 지나는 길인 탄도는 지구의 중력은 물론 바람과 습도가 지배하는 변화무쌍한 공간이다. 과연 저격수들은 이런 물리적 변수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중력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총구를 떠난 탄환은 절대로 직선운동을 하지 않는다. 중력 때문이다. 정확히 수평으로 발사된 탄환은 중력의 영향 때문에 총구를 떠난지 단 1초면 5m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사람의 키를 감안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오차다. 거리가 멀어지고 탄환이 날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차는 점점 더 커진다. 그래서 저격수는 멀리 있는 목표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미리 발사 각도를 높인다. 이런 정밀 작업을 어림짐작으로 하기는 매우 어려워서 스코프라는 특수조준장비를 저격소총에 달아 사용한다.

스코프 안에는 십자망선(cross hair)이 있다. 십자망선은 K2나 M16 자동소총에서 표적을 조준하는 데 쓰는 가늠자, 가늠쇠 역할을 한다. 십자망선은 처음 영점(기준)을 잡은 거리에 있는 표적에 정확히 맞도록 돼 있다. 우리나라 해병대는 300m, 미 육군은 900m를 기준으로 영점을 잡는다.

만약 표적과 거리가 더 멀다면 살짝 표적의 위쪽을 겨냥해 쏘거나 스코프 상단의 크리크를 조절해야한다. 상단 크리크를 돌리면 십자망선이 위 아래로 미세하게 움직인다. 예를 들어 더 멀리 쏘기 위해서는 십자망선을 아래로 내린다. 표적을 십자망선 중앙에 맞추기 위해 총을 움직이면 자연스레 총구가 위쪽으로 향한다.

크리크 눈금을 한 칸 돌릴 때마다 발사각도는 1분(1분은 60분의 1도) 만큼 달라진다. 발사각도가 1분 높아지면 탄환은 100m 더 멀리 있는 표적에 적중하게 된다. 즉 크리크 눈금을 한 칸 돌리면 100m 더 멀리 있는 표적을 맞출 수 있다. 만약 300m로 영점이 잡힌 스코프를 통해 700m 거리에 있는 표적을 맞춰야 한다면 크리크 눈금 4칸을 돌리고 사격하면 된다.

따라서 표적과의 거리를 미리 알고 있어야만 한다. 요즘엔 보통 레이저 거리측정기로 거리를 측정한다. 발사한 레이저가 표적에 닿았다가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을 이용해 거리를 알아낸다. 만약 레이저 측정기가 없다면 지도를 보고 거리를 계산하거나, 스코프 안의 눈금을 이용한다. 사람의 키가 특정 배율의 스코프 안에서 얼마나 길게 보이는지 알면 간단한 비례식을 통해 거리를 구할 수 있다.

바람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하는 것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주인공 남이(박해일 분)는 이렇게 말하며 활시위를 놓았다. 그러나 저격수는 바람을 철저히 계산해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중력은 지구 어디서나 비슷하지만, 바람은 시시때때로 바뀐다. 저격수에게는 훨씬 더 골치인 물리변수다. 피부에 가까스로 느껴지는 세기의 남실바람(초속 1.5m)이 불면 탄환은 어떻게 될까. 1km를 날아갔을 때 표적에서 무려 70cm 이상 벗어나게 된다.

탄도를 바람에 맞게 수정하기 위해서는 바람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깃발은 가장 편리한 척도다. 깃발을 보면 바람의 방향은 물론 깃대와 휘날리고 있는 깃발의 각도를 이용해 바람의 세기도 알 수 있다.

저격수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척도는 바로 아지랑이다. 맨눈으로 보는 아지랑이는 그저 아래에서 위로 일렁인다. 하지만 고배율인 스코프로 아지랑이를 확대해서 보면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알 수 있다. 바람이 없는 상태에서 아지랑이는 수직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바람이 세질수록 바람을 따라 기울다가, 초속 4m 이상의 산들바람이 불면 거의 수평으로 움직인다.

다음에는 바람이 탄도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지 계산해야 한다. 이때는 표적까지의 거리도 고려해야 한다. 거리가 멀수록 표적까지 날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바람의 영향에 노출되는 시간도 함께 길어진다. 또 멀리 날아갈수록 공기의 저항 때문에 탄환의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거리에 따른 상수(c) 100~500m 에서는 15, 600m 에서는 14, 700~800m 에서는 13, 900m 에서는 12, 1000m 에서는 11]

거리(m)÷100×바람속도(mph)/거리에 따른 상수(c)=수정해야할 각도(분)

이 공식은 바람의 영향을 고려해 크리크를 조절하기 위해 저격수들이 사용하는 간단한 공식이다. 위 공식을 계산하면 바람의 영향 때문에 저격소총을 몇 분의 각도만큼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틀어 쏴야하는지 알 수 있다. 스코프의 오른쪽에 달린 크리크를 이용한다.

이제 탄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중력과 바람을 계산하는 법을 알았다. 이 기사를 읽은 과학동아 독자도 백발백중의 저격수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저격수가 되는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 탄환은 총구를 떠나는 순간부터 공기의 저항과 맞닥뜨려야 한다. 저격수는 공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푸딩을 뚫고 표적을 명중시켜야만 한다.



저항


눈에 보이지 않는 푸딩을 뚫어라


공기는 고도와 온도에 따라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때론 질겨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푸딩이다. 고도와 온도에 따라 공기의 밀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고도와 온도가 높아지면 공기의 밀도는 낮아진다. 반대로 고도와 온도가 낮아지면 밀도는 높아진다. 공기의 밀도는 날아가는 탄환이 받는 공기의 저항과 비례한다. 따라서 공기의 밀도에 따라 탄환이 날아갈 수 있는 거리가 길어지거나 짧아진다.

예를 들어보자. 해발 0m에서 영점을 잡은 저격소총을 해발 1500m가 넘는 태백산 정상 같은 곳에서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탄환이 표적을 아예 빗나가버린다. 온도의 변화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해변에서 영점을 잡은 저격소총으로 태백산에서 1km 떨어진 표적에 쏘면 1m 더 높은 곳에 맞는다. 고도에 따라 탄도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쉽게 계산할 수 있는 식이 없다. 경험에 의존하거나 저격수를 위한 특수한 표를 이용해야 한다.

온도가 탄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기 위해선 고도의 영향을 계산할 때와 마찬가지로 어떤 환경에서 영점을 잡았는지가 중요하다. 영점을 잡았던 환경과 약 10℃의 차이가 생길 때마다 약 1분(상단 크리크 한 눈금) 정도의 오차가 발생한다.

다른 변수는 공기 중에 퍼져있는 물, 즉 습도다. 공기 중의 수분은 탄환의 회전을 더디게 해 탄환의 진행을 방해한다. 처음 영점을 잡았던 환경에서 약 20% 정도 습도가 변할 때마다 1분 정도의 각도 오차가 생긴다. 고도와 온도, 습도로 인한 탄도의 변화는 중력처럼 탄환의 포물선 운동에 변화를 주기 때문에 스코프 상단의 크리크를 조절해 보정할 수 있다.

아지랑이를 통해 바람을 보듯, 저격수는 습도 또한 눈으로 ‘볼’ 수 있다. 스코프를 통해 먼 거리에 있는 표적을 볼 때 그 모습이 뿌옇게 보일수록 습도가 높다. 습도가 100%가 되면 짙은 안개가 낀 상황이기 때문에 아예 저격을 할 수 없게 된다.



1.7발의 의미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반 장병들이 적 1명을 제압하기 위해 쓴 총알은 2만 5000발. 베트남전에서 저격수가 적 1명을 제압하기 위해 쓴 총알은 단 1.7발이다. ‘2만 5000발 대 1.7발’이라는 차이는 엄청나게 커 보인다. 그럼에도 저격수가 한 명의 적을 제압하는 데 쓴 탄환 수는 1발이 아닌 1.7발이다. 아무리 저격이라도 한 번 쏘면 100% 명중하는 ‘원샷원킬’이 아니라는 뜻이다. 중력, 바람, 고도와 온도, 습도 등 모든 물리량을 계산해도, 저격수도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실수를 범하는 것일까.

익명의 관계자는 “작전 환경을 100% 관측할 수 없기 때문에 두 번째 발을 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 그렇다. 매우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가는 탄환은 빗방울 하나만 충돌해도 곧 바로 큰 오차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바람이나 온도 또한 저격수와 멀리 떨어진 표적 사이의 공간에서 구간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저격수는 방아쇠를 당긴 이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탄환이 도착하는 위치를 확인해야만 한다. 만약 빗나갔다면 오차를 적용해서 최대한 빨리 다음 발을 발사해야 한다. 두 번째 탄환은 반드시 맞춰야만 한다. 이 관계자는 “표적과의 먼 거리 때문에 두 발까지는 비교적 안전하게 쏠 수 있지만 세 번째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정확도 100%는 저격수들이 여전히 추구하는 목표다. 저격용 탄환은 테러리스트를 빗겨 지나가는 순간부터 무고한 인질의 목숨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격필살, 100%의 정확도를 위해 저격수는 오늘도 물리를 쏜다.